제가 서울로 전학을 와 오래 서로의 소식만 어른들을 통해 듣고 있었죠. 다른 친구들의 이름은 다 잊었어도 그와의 기억들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는데 고3때 대학원서 넣으러 그가 서울에 와 다시 만났지요. 우리집에 와서 자고 갔죠. 그는 많이 달라졌지만 너무도 근사한 모습이었어요. 큰키, 잘생긴 얼굴에 우수어린 표정... 원하던 과를 못가게 되자 그는 지방대학을 택했고 저는 그대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서로의 안부를 묻는 편지로 시작된 글들이 조금씩 내용이 달라져 갔어요. 서로를 그리워하게 된거지요. 그와 나의 공간적 거리가 너무도 먼 탓에 아주 가끔씩 서로가 사는 도시의 중간쯤에서 만나 얼굴 잠깐 보고 헤어지기를 몇년,그를 군대보내고 전 대학졸업하고 조금씩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슴에 담아두고 사는 법을 배워가게 되었어요. 삶에 지친 나에게 지금의 남편이 다가왔어요. 너무도 잘해주는 사람이라 어느새 기대어 버리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일까 고민하는 나를 보았죠. 그때 나의 오랜 사랑은 다시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죠. 그에게 찾아갔어요. 그리고 얘기를 했지요. 나 너무 힘들다고, 내게 지금 어떤 사람이 청혼을 했노라고 나를 어떻게 할꺼냐고. 오랜 시간 그는 말이 없었어요. 군에 가면서 그는 내게서 조금씩 마음을 닫아걸고 내게 어떤 미래도 얘기하지 않았거든요.그래도 내 】옜?그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의 대답은 나의 기대를 무참히 부수고 나를 절망하게 했지요. 결혼하라는 거였어요. 자신은 자신이 없노라고. 결혼날짜를 일주일 앞두고 다시 그를 찾아갔었어요. 그냥 곁에 하루만 있게 해 달라고. 밤새 그의 곁에 누워 가슴으로만 울다 결국 돌아왔고 결혼했어요. 다른 남자랑. 그가 미웠어요. 너무도 원망스러웠어요. 그래도 그를 잊을 수 없었어요. 가끔 그에게서 전화가 왔죠. 잘 지내고 있느냐고. 내가 힘들때도 그에게 전화를 했어요. 하소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그렇게 서로에 대한 마음은 가슴에 묻어두고 그와 난 친구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도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지요 몇년이 흐른 뒤 서로가 친구임에 길들여져 있다고 느끼고 있을 때 그가 느닷없이 고백했어요. 아직도 널 사랑한다고.예전이나 다름없이 널 사랑하고 있노라고.가슴 한구석이 내려앉아 울고 말았지요. 왜 이제와서,그동안 잘도 감추고 살아놓고 ... 모르겠어요. 지금도 가끔 그를 만나 차를 마시고 영화도 보고 친구들사이에 섞여 여행도 가지만 결코 남들에게 내 보일 수 없는 서로의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그는 지독히도 완벽주의잔데. 몇번이나 그를 찾아갔던 나를,너의 여자가 되고 싶다던 나를 그는 이 다음에 내가 널 당당하게 안을 수 있을 때 갖겠노라며 달래곤 했었는데 그래서 한편으로 미워도 한편으론 그에게 감사했었는데.그가 얼마전에 말했어요. 널 그렇게 보내는게 아니었다고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절대로 보내지 않을꺼라고.그토록 오랜세월 상처되어온 사랑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아직도 그를 가슴에 묻어두고 남몰래 울곤하는데 새삼스레 다가서는 그의 마음이 너무도 혼란스러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네요? 어찌해야 할런지.. 그는 내게 말했어요. 주어진 현실속에서 서로의 자리를 인정하면서 서로의 환경까지도 아껴주자고. 그리고 사랑하며 살자고. 그게 가능할런지...